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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인 척 하게 만든 자, 그의 이름은 히사이시 조

by TNT007 2014. 5. 5.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나는 음감이 부족하다. 정말이지 음악 따위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 따로 음악 따로. 그래서 영화 보고 음악이 좋았네, 하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그랬나? 싶다. 한때는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신경 써 들으려는 노력도 해보았다. 그러나 웬걸. 그랬더니, 이번엔 내용 접수가 안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항상 나는 내가 멀티형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잊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내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귀에 스티커처럼 착 달라붙어 버린다.『기쿠지로의 여름』은 음악이 듣고 싶어 일부러 여러 번 보게 되었다 또,『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왈츠풍 메인테마곡 때문에 머릿속에 명작으로 분류돼 있다.

 

특히, 「Summer」는 여름비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겨울에도 여름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더 놀라운 일은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게 만든 점이다. 진심으로. 음표만 봐도 편두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던 내가 바이엘을 쳐보겠다고 결심했다.

 

Joe Hisaishi Live - Summer

히사이시 조 이야기를 해보자. 후지사와 마모루. 이것이 그의 본명이다. 퀸시 존스를 일본어 발음으로 따와 만들어진 예명이란다. 기억하기 쉽지 않은 본명 보다 쉽고 간단한(?)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거장들의 이름은 뭔가 단촐하다. 거장이 되고 싶거든 먼저 제대로 된 필명을 골라라.)

 

그는 학생 때부터 음악가로서 명성 또한 자자했다고 한다. 그 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작곡을 제안 받았다. 당연히(!)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곡에 감명받았고, 그때부터 히사이시 조와 콤비가 되었다.

 

기타노 다케시도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음악이 수놓아진 다케시의 영화를 사랑했다.

 

훗날 그는 영화광 아버지를 따라 갔던 유년시절의 극장 나들이가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히사이시 조는 이미 세계적인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응원한다. 그래서 피디의 열의 넘치는 편지에 감동해 『웰컴 투 동막골』에 선뜻 참여했단다.

 

또한 그는 완벽주의자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작업할 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다음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그의 곡은 들을수록 맛이 난다. 들을수록 가슴에 스며든다. 그리고 음악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편애하는 것은 그가 가진 음악적 표현에 대한 동경 탓이리라. 나는 절대 가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음악에 대한 그것들.

 

고백하건데 건반 한 번 눌러 본 적 없는 내게 음악시간의 피아노 테스트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저변에는 음악과 친해지고 싶었던 수줍은 마음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 수줍은 마음을 건들여 준 것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들이었다. 조금 일찍 그의 음악을 만났더라면 음악을 즐기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웹진 <랄라고고> Vol.5